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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 진실과 선택과 기억의 힘

by red-sura 2025. 7. 27.

영화 1987 포스터 사진

영화 ‘1987’은 단순히 과거의 한 장면을 재현하는 시대극이 아닙니다. 1987년이라는 한국 현대사의 전환점을 배경으로, 각기 다른 사람들이 ‘진실’을 마주하고 선택을 내리는 순간들을 담담하면서도 깊이 있게 그려냅니다. 이 작품은 단순한 정치 드라마나 사회고발 영화가 아닌, 우리가 지금 어떤 사회에 살고 있고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하는지를 돌아보게 만드는 질문이자 기록입니다. 한 명의 영웅이 세상을 바꾼 것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의 작지만 중요한 선택이 모여 변화를 이끌어냈다는 사실을 영화는 차분히 전달합니다. ‘1987’은 역사를 돌아보는 방식뿐만 아니라, 현재 우리 삶의 태도를 묻는 방식으로 감동을 전합니다.

진실을 향한 작은 움직임들

‘1987’의 시작은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입니다. 한 대학생이 경찰 조사 도중 사망했고, 정부는 이를 단순한 사고로 덮으려 합니다. 하지만 기자, 검사, 교도관, 의사 등 다양한 사람들이 조금씩 의심하고 움직이면서 사건은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영화는 이런 흐름을 감정에 기대지 않고 인물의 행동과 말, 침묵 속에서 자연스럽게 풀어갑니다. 진실이란 언제나 한순간에 드러나는 게 아니라, 누군가의 결단과 용기가 모일 때 조금씩 얼굴을 드러내는 것임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가장 인상적인 점은, 등장하는 인물들이 모두 평범하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초인적인 능력도, 거창한 사명감도 없이, 그냥 눈앞의 일을 ‘그냥 넘기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그 작고 조용한 움직임이 결국 진실을 세상에 드러내는 결정적인 힘이 됩니다. 우리는 이들을 보며, 나도 그런 선택을 할 수 있을까 되묻게 됩니다. 진실은 거대한 진영 싸움이 아니라, 누군가가 외면하지 않았던 그 ‘한 걸음’에서 시작됩니다.

선택의 순간, 그리고 그 무게

영화 속 인물들은 누구나 크고 작은 갈림길에 서 있습니다. 누군가는 묵인할 수도 있었고, 어떤 이는 침묵하는 게 더 편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영화는 ‘말하지 않음’도 결국 하나의 선택이라는 점을 보여줍니다. 교도관은 기록을 넘겨야 할지 망설이고, 의사는 진실을 덮을지 말할지 고민합니다. 검사는 상부의 압력을 받지만 진실을 외면하지 않고, 대학생은 자신이 처한 상황 속에서도 사회를 바라봅니다. 이 각각의 선택은 개별적으로 보면 작은 움직임처럼 보이지만, 결국 모여 커다란 파도를 만듭니다. 특히 영화는 선택을 영웅적으로 그리지 않습니다. 망설이고, 흔들리고, 두려워하는 과정을 숨기지 않고 보여주죠. 바로 그 ‘사람다운 흔들림’이 영화를 더 진정성 있게 만듭니다. 누구나 완벽하지는 않지만, 각자의 위치에서 내리는 한 번의 선택이 어떤 변화로 이어지는지를 직접 보여줍니다. 결과적으로 ‘1987’은 선택 앞에서 당신이라면 어떤 결정을 할 수 있겠느냐고 조용히 묻습니다. 이 영화가 단지 과거를 되새기는 데 머물지 않고, 오늘 우리의 현실을 향해 계속 질문을 던지는 이유입니다.

기억해야 할 이유, 반복하지 않기 위해

‘1987’의 마지막은 어떤 감정적인 환희도, 완벽한 정의 구현도 아닙니다. 그해 6월항쟁의 결과로 얻어낸 대통령 직선제는 분명한 변화였지만, 그 과정에서 희생된 사람들과 해결되지 않은 수많은 질문들이 남아 있습니다. 영화는 이 승리의 순간조차 지나치게 낙관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진짜 변화는 그 이후에도 계속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영화는 관객에게 말합니다. 이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고, 아직도 누군가는 진실을 말할 수 있을지 망설이고 있다고. 그리고 지금 우리가 누리는 권리와 자유도, 누군가의 용기와 선택이 쌓여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기억하라고. ‘1987’은 감정을 소비하게 만드는 영화가 아니라, 관객 스스로가 무엇을 느끼고 기억해야 할지를 생각하게 만듭니다. 진실은 시간이 지나면 잊히기 쉽습니다. 하지만 그 진실이 다시 묻히지 않도록 하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이 영화를 보고 나서 해야 할 몫일 것입니다. ‘1987’은 과거를 정리하려는 영화가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가 지금 서 있는 자리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를 묻는 영화입니다. 그리고 그 물음은 시간 속에 오래도록 남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