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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운전사, 침묵과 목격 사이 잊힌 진실의 기록자들

by red-sura 2025. 8. 1.

영화 택시운전사 포스터 사진

‘택시운전사(A Taxi Driver, 2017)’는 1980년 5월 광주를 배경으로 하지만, 단순한 역사 재현이나 영웅 서사는 아닙니다. 이 영화는 ‘기록되지 않은 진실’, ‘침묵 속의 목격’이라는 키워드로 접근할 때 더욱 깊은 의미를 가집니다. 김만섭과 독일 기자 힌츠페터의 여정은, 단순한 전달이 아니라 '부재한 보도'의 구조 자체를 고발합니다. 이번 글에서는 이 영화를 '보도되지 않은 진실의 흔적'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며, 진실이 어떻게 침묵 속에 묻히는지를 짚어봅니다.

 

택시운전사와 목격자 구조: 누가 기록하는가

‘택시운전사’는 김만섭이라는 민간인이 힌츠페터를 태우고 광주로 향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이 여정은 단순한 '운전과 동행'이 아닙니다. 영화는 오히려 김만섭이 ‘기록되지 않은 존재’에서 ‘현장의 증인’으로 전환되는 구조적 과정을 섬세하게 추적합니다. 초반부 김만섭은 뉴스도, 정세도 관심이 없는 인물입니다. 그는 서울에서 택시를 운전하며 생계만을 위해 살아가는 평범한 가장입니다. 이처럼 영화는 ‘사건의 중심’이 아닌 ‘주변부의 눈’을 통해 서사를 엮습니다. 바로 그 점에서 이 영화는 전형적인 영웅 서사와 거리를 둡니다. 김만섭은 무엇인가를 ‘하려 한’ 인물이 아니라, ‘보게 된’ 인물입니다. 이 차이가 바로 이 영화의 핵심입니다. 광주에 도착한 후 그는 처음엔 경계하고 회피합니다. 하지만 그가 본 것은 총성, 피, 시민, 그리고 숨죽인 언론이었습니다. 그는 처음에는 말하지 않지만, 점점 ‘말할 수밖에 없는 상태’로 밀려납니다. 영화는 이 지점에서 ‘정보’가 어떻게 검열되고, ‘기록’이 어떻게 사라지는지를 드러냅니다. 실제로 1980년 당시 광주의 실상은 대부분 국내 언론에 보도되지 않았습니다. 외신 기자였던 힌츠페터가 카메라로 남긴 영상은 거의 유일한 기록입니다. 영화는 그 영상이 존재할 수 있었던 조건—김만섭의 평범함과 무명의 선택—을 통해 ‘누가 목격자가 되고, 누가 증언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침묵의 공간, 언론의 부재가 만든 공백

‘택시운전사’에서 가장 인상 깊은 것은 바로 ‘보도되지 않는 현실’에 대한 묘사입니다. 광주로 향하는 중 군이 검문하고, 기자와 김만섭을 의심하며, 심지어는 서울로 돌아가려는 길도 차단됩니다. 이 상황은 단순한 신체적 이동의 문제라기보다, 정보와 언론의 봉쇄가 가진 상징성으로 해석해야 합니다. 당시 대부분의 국내 언론은 계엄령 하에 침묵했습니다. 진압의 잔혹성, 시민의 저항, 어린아이들의 죽음—all은 ‘뉴스’가 아닌 ‘소문’의 영역에 갇혀 있었습니다. 영화 속 힌츠페터는 이 소문을 ‘기록’으로 전환하려는 인물입니다. 하지만 흥미로운 것은, 그의 카메라보다 더 무거운 역할을 한 사람이 바로 김만섭이라는 점입니다. 김만섭은 말을 아끼고, 상황을 파악하려고 애쓰며, 끝내 그 무엇도 확신할 수 없는 혼란 속에서 ‘기억’을 간직합니다. 영화는 언론이 침묵할 때, 그 공백을 메우는 것은 결국 ‘평범한 개인의 목격’이라는 사실을 조명합니다. 힌츠페터는 영상을 남겼고, 김만섭은 경험을 남겼습니다. 그리고 이 둘의 결합이 ‘부재한 서사’를 현실로 바꾸었습니다. 침묵은 단순히 말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말할 수 없게 만드는 구조에서 비롯됩니다. 당시 군사정권은 정보를 차단했고, 언론은 침묵을 택했습니다. 영화는 그 침묵을 뚫고 진실이 어떻게 돌아왔는지를 아주 조심스럽게 구성합니다. 그것은 영웅의 외침이 아니라, 평범한 한 시민의 짧은 고개 돌림, 정차, 손짓과 같은 일상 속 행동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기록되지 않은 사람들, 남겨진 진실의 무게

‘택시운전사’는 단지 힌츠페터와 김만섭의 이야기만은 아닙니다. 영화는 끝내 김만섭의 실명을 밝히지 않습니다. 실존 인물은 추적되지 않았고, 힌츠페터는 수십 년 동안 그를 찾았습니다. 이 미완성의 결말이야말로 영화가 관객에게 가장 강력하게 던지는 메시지입니다. **‘기록되지 않은 사람들은 어떻게 기억될 것인가?’** 진실은 때때로 기록되지 않기에 사라지고, 목격자들이 침묵했기에 왜곡됩니다. 하지만 영화는 침묵 속에도 남는 감정과 장면, 그리고 그것을 본 이의 흔들리는 눈동자에 진실이 남아 있음을 보여줍니다. ‘택시운전사’는 결국 진실의 보유자라기보다는, 진실이 지워지는 과정을 ‘보는 사람’의 역할을 강조하는 영화입니다. 현대 사회에서도 여전히 ‘무엇이 보도되고, 무엇이 감춰지는가’는 중요한 질문입니다. 진실은 종종 힘없는 곳에서 피어오르고, 가장 작고 평범한 이들이 그것을 전합니다. 영화는 힌츠페터의 영상보다 더 오랫동안 남는 것은 ‘말할 수 없는 침묵을 견딘 자’의 존재라고 말합니다. ‘택시운전사’는 침묵과 목격, 기록과 부재, 그리고 기억 사이에 존재하는 ‘틈’을 보여줍니다. 그 틈은 지금도 존재하며, 여전히 누군가는 말하고, 누군가는 침묵합니다. 그 사이에서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요. 영화는 묻지 않지만, 관객은 스스로 답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