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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치 미 이프 유 캔, 속임수와 정체성 그리고 자유의 본질

by red-sura 2025. 8. 5.

영화 "캐치 미 이프 유 캔" 포스터 사진

‘캐치 미 이프 유 캔’은 1960년대 미국을 배경으로, 한 천재 사기꾼 프랭크 애버그네일 주니어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입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단순한 범죄 스릴러가 아니라, 정체성과 자유에 대한 탐구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인간 드라마입니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연기한 프랭크는 사회의 틈새를 이용해 조종사, 의사, 변호사로 변신하며 거대한 사기를 벌이지만, 그 속에는 아버지의 붕괴, 가정의 해체, 그리고 진짜 자신을 찾아가려는 절박한 욕망이 숨어 있습니다. 이 영화는 속임수의 기술보다, 오히려 속임수 너머에 있는 자유의 본질을 묻는 작품입니다.

 

속임수의 기술, 정체성의 탈착

‘캐치 미 이프 유 캔’의 시작은 아버지의 몰락입니다. 프랭크 애버그네일 시니어는 사회에서 점점 밀려나고, 아내는 그런 남편을 떠납니다. 이때 주인공 프랭크는 가족이라는 정체성의 기둥을 잃게 되며, 스스로 정체성을 새로 만들기 시작합니다. 그는 학교에서 교사인 척하며 친구들을 속이고, 점점 ‘다른 사람으로 사는 법’을 익혀나갑니다. 이 초기 장면은 단순한 유머로 보이지만, 사실상 ‘자아 분열’의 시초를 보여줍니다. 프랭크는 가장 먼저 조종사로 위장합니다. 유니폼, 말투, 용어, 주변의 시선까지 복제하며 진짜와 거의 동일한 인물로 변신합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가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 변신하는 것이 아니라, 그 변신을 통해 인정받고 싶어 한다는 점입니다. 그의 속임수는 사회적 위계 속에서 존재감을 되찾으려는 시도이며, 아버지의 실패를 극복하고 싶은 욕망이 반영된 것입니다. 이러한 속임수는 단순한 범죄가 아니라, 사회적 역할과 외양이 실제 정체성처럼 기능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프랭크는 의사, 변호사로서도 거침없이 연기하며, 타인의 시선을 통해 ‘내가 누구인지’를 규정받고자 합니다. 이는 곧 자아가 타인의 인정에 의해 구성되는 존재임을 시사합니다. 결국 프랭크는 계속해서 자신이 아닌 누군가가 되어야만 존재할 수 있게 되며, 이 반복은 정체성의 고갈로 이어집니다. 그는 어느 순간부터 더 이상 자신이 누구인지 설명할 수 없게 되며, 결국 ‘정체성을 소비하는 삶’에 스스로 질식하게 됩니다. 영화는 이 과정을 통해 ‘속이는 자’가 아닌 ‘속이며 자신을 지우는 자’의 고독을 보여줍니다.

 

추격과 회피, 정체성의 도망자

영화는 프랭크의 일방적인 질주만 보여주지 않습니다. 그를 추적하는 FBI 요원 칼 핸라티(톰 행크스)의 시선을 함께 제시함으로써, 쫓고 쫓기는 이야기를 인간관계의 비유로 확장시킵니다. 핸라티는 처음에는 단지 임무로 그를 쫓지만, 점차 프랭크의 고립감과 외로움을 이해하게 되며 묘한 유대감을 형성합니다. 이 추격 구조는 단순한 긴장감을 넘어, 정체성과 자유 사이에서 흔들리는 인간의 모습을 대조적으로 보여줍니다. 프랭크는 회피하며 자유를 꿈꾸지만, 그 자유는 언제나 또 다른 거짓과 외면 위에 세워집니다. 반대로 핸라티는 제도에 속박되어 있지만, 자신의 역할에 정직하게 반응하며 일관된 삶을 살아갑니다. 이 두 인물의 대조는 ‘진짜 자유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게 합니다. 핸라티는 프랭크에게 유일하게 진실을 말하는 인물이며, 프랭크가 자신의 실체를 확인하게 만드는 거울 같은 존재입니다. 크리스마스마다 걸려오는 전화는 단지 쫓기고 있다는 증거가 아니라, 프랭크가 누구에게라도 ‘진짜 자신’을 드러내고 싶은 무의식적 욕망의 표현입니다. 이는 도망자가 진정 원하는 것이 은신이 아니라, ‘발견되는 것’ 일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특히 영화 후반부, 프랭크가 모든 신분을 버리고 어릴 적 살던 집을 찾아가는 장면은 정체성의 회귀를 상징합니다. 그는 더 이상 누구도 연기할 수 없고, 누구의 이름으로도 살아갈 수 없는 순간에 이릅니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그는 핸라티에게 붙잡히는 것을 받아들입니다. 이 결말은 ‘자유’가 회피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직면할 때 비로소 시작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강하게 전달합니다.

 

속임수의 끝, 자유의 본질

‘캐치 미 이프 유 캔’은 범죄와 추적이라는 외형을 지닌 영화이지만, 그 이면에는 인간의 존재론적 갈망이 깔려 있습니다. 프랭크는 단순히 돈을 위해 사기를 친 것이 아니라, 잃어버린 가족, 흔들린 정체성, 인정받고 싶은 욕망, 그리고 ‘자유로운 삶’에 대한 환상을 좇아 달린 인물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경험한 모든 속임수는 결국 자기 자신으로부터 도망치는 것이었고, 그 도망은 끝내 고립으로 귀결됩니다. 반면, 핸라티는 그를 끝까지 추적하면서도 인간적인 연민을 잃지 않습니다. 프랭크를 체포한 뒤에도 그를 형사 자문관으로 채용하는 과정은, 단지 범죄자를 감시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정체성을 회복시켜 주는 과정으로 보입니다. 그가 ‘이제는 거짓말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는 장면은 영화 전체의 핵심 메시지를 응축합니다. 이 영화는 ‘속임수’라는 키워드를 통해 자유의 이면을 보여줍니다. 우리가 자유롭다고 느끼는 순간이 사실은 또 다른 구속일 수 있으며, 자아를 상실한 채 맞이한 자유는 진정한 해방이 아님을 말합니다. 진짜 자유란 자신의 결핍을 인정하고, 그것을 기반으로 새 정체성을 만들어가는 과정 속에 있다는 것입니다. 결국, 프랭크는 잡혔기에 살아났고, 정체성을 잃었기에 새로 만들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캐치 미 이프 유 캔’이 진짜로 이야기하고자 하는 자유의 본질입니다. 그 자유는 더 이상 회피의 이름이 아니며, 자기 자신을 마주 보는 용기에서 시작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