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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커, 고립과 무관심 속 붕괴

by red-sura 2025. 7. 29.

영화 조커 포스터 사진

2019년 개봉한 '조커'는 단순한 악당의 기원을 넘어서, 고립된 개인이 사회의 무관심 속에서 어떻게 파괴되어 가는지를 깊이 있게 다룬 작품입니다. 영화는 폭력을 미화하지 않으면서도, 한 인간이 겪는 심리적 균열과 외면당하는 현실을 직시하게 만듭니다. 화려한 장면 없이도 강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이 영화는, 개인의 파멸 뒤에 놓인 사회 구조의 책임을 조용히 질문합니다. 지금 이 글에서는 조커라는 인물을 통해 드러나는 고립, 무관심, 자아 붕괴의 과정을 살펴보려 합니다.

 

조커, 고립된 자의 시작

‘조커’의 주인공 아서 플렉은 세상과 단절된 채 살아가는 인물입니다. 그는 코미디언이라는 꿈을 품고 있지만, 일상은 희망과는 거리가 멉니다. 거리에서 광대로 일하며 생계를 유지하고, 아픈 어머니를 돌보며 고단한 시간을 보내지만, 주변 사람들은 그의 존재를 알아주지 않습니다. 영화는 이처럼 철저히 외면받는 한 인간의 삶을 세밀하게 따라갑니다. 아서가 겪는 고립은 물리적인 거리감이 아니라, 감정적·사회적 단절에서 비롯됩니다. 그는 대화 속에서 무시당하고, 병적 웃음 증세로 인해 더더욱 이해받지 못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유일한 의지처였던 복지 상담마저 예산 삭감으로 종료되면서 그는 약물 치료도 받지 못하게 됩니다. 점점 그는 사회 속에서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되어갑니다. 이 영화의 초반부는 한 인간이 고립되는 과정을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보여줍니다. 그의 이야기는 단지 허구 속 이야기가 아니라, 현대 사회에서 존재하지만 외면당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삶을 대변합니다. 지하철 안 폭행 장면, 동료의 배신, 거리에서 받는 조롱은 모두 아서가 느끼는 세상의 벽을 현실로 형상화한 장면입니다. 조커라는 캐릭터는 처음부터 악인이 아닙니다. 그는 고립된 채 살아가면서도 희망을 놓지 않으려 노력했고, 주변과 연결되길 원했습니다. 하지만 계속되는 단절과 상처는 그의 내면을 뒤틀어 놓고, 그가 서 있던 자리를 더욱 외롭게 만듭니다. 이처럼 영화는 고립이 어떻게 인간을 해체시켜 가는지를 조용하고도 강하게 묘사합니다.

 

내면의 균열이 만든 붕괴

아서 플렉의 심리는 점차 붕괴의 길을 걷게 됩니다. 그의 내면은 외부의 공격뿐 아니라, 오랜 상처와 자책, 그리고 왜곡된 가족관계로 인해 이미 금이 가 있었습니다. 영화는 이 인물이 단순히 정신질환을 가진 존재가 아니라, 무너져가는 내면세계를 가진 복합적인 인물임을 보여줍니다. 그가 가장 무너지는 순간은, 사회에 대한 마지막 기대가 무너졌을 때입니다. 방송에 출연해 자신을 보여주고 싶었던 그는 공개적으로 조롱당하고, 이는 그의 자존감에 마지막 타격을 가합니다. 영화는 이 과정을 자극적이지 않게, 하지만 섬세하게 그려냅니다. 조커로 변화하는 그 순간은 계획된 범죄가 아니라, 내면이 감당할 수 없는 한계점에 도달한 결과입니다. 아서가 붕괴되는 과정은 단순한 악으로의 전환이 아닙니다. 그것은 오랜 시간 동안 축적된 심리적 압박과 무시, 그리고 고통이 터져 나오는 결과입니다. 그는 스스로를 ‘보이지 않는 사람’이라 표현합니다. 그 한 마디는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상징이자 메시지입니다. ‘보이지 않는 사람’이 된다는 것은, 존재를 인정받지 못한 채 사라져 간다는 의미입니다. 영화는 붕괴를 시각적으로도 탁월하게 보여줍니다. 어둡고 불균형한 조명, 폐쇄된 공간, 반복되는 계단 장면 등은 아서의 심리적 압박과 해체되는 자아를 시각적으로 표현합니다. 결국 그는 자신의 현실과 완전히 단절된 새로운 인격체, ‘조커’로 탄생하게 됩니다.

 

무관심은 가장 잔인한 폭력

‘조커’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선과 악의 이분법을 해체합니다. 아서 플렉은 태생적으로 악한 인물이 아니며, 영화는 그가 왜 그렇게 되었는지를 끈질기게 추적합니다. 그리고 그 원인 중 가장 중심에 있는 것은 바로 사회의 무관심입니다. 주변 사람들의 냉소, 복지의 축소, 제도적 방치 속에서 그는 점점 더 고립되고, 결국 다른 형태로 자신의 존재를 외치게 됩니다. 이 영화가 주는 가장 강력한 메시지는, 누군가를 끝까지 외면하면 어떤 결과가 오는가에 대한 경고입니다. 아서의 사례는 극단적이지만, 현실에서도 우리는 누군가를 ‘이상한 사람’이라 치부하며 거리를 두곤 합니다. 하지만 그 사람은 단지 지금까지 한 번도 제대로 들어주는 사람이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조커’는 그런 사람들에게 한 번쯤은 시선을 돌려야 한다는 묵직한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무관심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존재 자체를 지우는 행위입니다. 그리고 그로 인해 벌어지는 일들은 때로는 상상 이상으로 파괴적일 수 있습니다. 영화는 이를 감정적으로 자극하지 않고, 오히려 차분하고 차가운 시선으로 바라봅니다. 그 시선이 관객에게 더 깊은 충격을 줍니다. 결국, ‘조커’는 우리 사회의 가장 약한 고리를 드러낸 작품입니다. 그 고리를 방치하면 어떤 파국이 벌어지는지를 명확히 보여줍니다. 그리고 질문을 던집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에서 또 다른 조커는 존재하지 않는가? 누군가를 외면하는 순간, 우리는 이미 그 조커를 만들어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