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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수라, 인간성의 붕괴와 선택 불가능한 시스템

by red-sura 2025. 8. 3.

영화 아수라 포스터 사진

영화 ‘아수라’는 기존 범죄 누아르 장르의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단순한 권력자와 비리 경찰의 충돌이 아니라, 구조적으로 인간성을 붕괴시키는 시스템 내부의 무력감을 정조준하는 작품입니다. 주인공 한도경이 선택하는 모든 행위는 개인의 욕망이나 판단이 아니라, 얽히고설킨 부패 권력, 조직, 검찰, 경찰 사이에서 불가능한 선택을 강요받은 결과물입니다. 이 영화는 권력의 폭력보다도, 그 안에서 살아남기 위해 인간이 어떻게 도덕을 포기하고 자신을 잃게 되는가에 대한 서사로 읽혀야 합니다.

 

아수라가 그려낸 인간성의 구조적 붕괴

영화 ‘아수라’는 경찰 한도경(정우성)을 중심으로 진행됩니다. 그는 병든 아내의 병원비를 마련하기 위해 악덕 시장 박성배(황정민)의 범죄에 협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가 흥미로운 지점은, 한도경이 선하거나 악하다는 구분으로 설명되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그는 정의를 포기하지 않았지만, 더 이상 정의를 선택할 수 없는 시스템 안에 갇혀 있습니다. 이 영화가 특별한 이유는, 선과 악의 구분이 의미 없을 만큼 현실이 회색이라는 점입니다. 박성배는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살인을 저지르고, 검찰은 정의를 내세우면서도 비열한 방식으로 협박을 일삼습니다. 한도경은 그 사이에서 생존을 위한 ‘잔인한 중재자’로 변모해 가며, 결국 자신조차도 어떤 위치에 서 있는지 혼동하게 됩니다. 그는 점차 인간적인 감정을 잃어갑니다. 동료를 배신하고, 죄 없는 시민의 희생을 묵인하며, 나중에는 자신의 감정에 무감각한 상태로 전락합니다. 이는 단순히 악에 물들었다기보다, 시스템이 인간에게 선택지를 제공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타난 결과입니다. ‘아수라’는 이러한 한 인간의 도덕적 붕괴를 구조적 문제로 제시합니다. 도경은 자신의 손으로 누구를 살리거나 구할 수 없고, 오직 다음 단계의 지옥으로 밀려갈 뿐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이 영화는 시스템의 설계 자체가 인간성을 말살한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이곳은 감정이 무기력한 공간이며, 인간은 도구로만 존재하는 세계입니다.

 

도덕적 판단이 무력한 세계, 선택은 없었다

한도경은 영화 내내 스스로를 정당화하거나 희생양 화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는 끊임없이 선택의 순간에 몰리지만, 그 어떤 선택도 자유롭거나 윤리적이지 않습니다. 검찰은 그를 협박하며 ‘정의로운 내부고발자’로 만들려 하고, 시장은 그를 포섭하여 ‘충성스러운 오른팔’로 사용합니다. 하지만 도경은 그 사이에서 어느 누구에게도 진심을 주지 못합니다. 그의 선택은 언제나 누군가를 죽이는 일, 혹은 자신이 죽지 않기 위한 선택입니다. 이 영화는 이런 반복을 통해 ‘선택이란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어떤 선택도 옳거나 의미 있는 결과를 가져오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 주인공은 점차 ‘판단하지 않음’을 익숙한 생존 수단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이때 영화는 도덕적 판단의 기능 자체가 무력화된 사회를 그리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정의란 허상이며, 윤리란 도구입니다. 누가 더 잔인한가, 누가 더 교묘하게 거짓을 조작하는가가 살아남는 기준이 되는 공간에서, 양심은 죄책감이 아니라 불필요한 감정일 뿐입니다. 도경이 끝내 선택하는 폭력은, 감정의 분출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반사적 반응입니다. 그 안에는 복수심도, 정의도 없습니다. 오직 피로 이어진 협박의 고리가 있을 뿐입니다. 이 과정에서 도경은 자신이 누구였는지를 점점 잊습니다. 결국 그는 자신이 경찰이었는지도, 인간이었는지도 확신할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립니다. 이처럼 ‘아수라’는 인간이 시스템 속에서 어떻게 도덕적 판단력을 상실하는가를 설명하는 메타포로 기능합니다. 여기서 폭력은 수단이 아니라 구조 자체이며, 희생은 정당성을 위한 절차가 아니라 잊히는 통계일 뿐입니다.

 

시스템의 얼굴, 부패보다 잔혹한 일상성

‘아수라’의 마지막은 어떤 구원도 남기지 않습니다. 한도경은 더 이상 자신이 무엇을 위해 행동하는지 설명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며, 그를 둘러싼 모든 인물들은 더 큰 시스템의 이익을 위해 쉽게 소모됩니다. 이는 ‘악인들의 싸움’이라는 단순한 틀을 넘어, 그 시스템에 살아남기 위해 누군가가 매일 포기해야만 하는 인간성의 단면을 보여주는 구조입니다. 박성배는 단순한 악역이 아닙니다. 그는 시대가 만들어낸 캐릭터이며, 그 자신도 두려움을 통해 권력을 유지할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검찰 역시 선이 아닌 정치적 계산 아래 움직이며, 도경은 그들 사이에서 가장 비인간적인 결정을 강요받는 존재입니다. 영화는 이를 통해 ‘악’이란 특정 인물이 아닌, 시스템 그 자체임을 드러냅니다. 구조적 부패란 단지 비리를 저지르는 행위가 아니라, 감정 없는 일상적 의사결정 안에 내재된 형태로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 일상성이야말로, 가장 끔찍한 폭력입니다. ‘아수라’는 이 같은 세계를 비판하거나 교훈적으로 묘사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냉혹한 현실을 냉정하게 보여주고, 관객이 직접 그 안에서 불편함을 감내하도록 유도합니다. 여기에 음악도, 감정도, 드라마도 배제된 채, 오직 처절한 ‘구조의 리얼리즘’만이 남습니다. 결국 ‘아수라’는 부패한 권력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 권력 안에서 인간이 얼마나 쉽게 무기력해질 수 있는가, 도덕과 감정이 어떻게 체계적으로 제거되는가를 드러내는 작품입니다. 이 영화는 묻습니다. “당신이라면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었는가?” 그리고 아마도, 우리는 대답하지 못한 채 자리를 뜨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