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바하’는 한국 사회의 종교적 현실과 믿음의 본질, 그리고 광신이 불러오는 파괴성과 이단의 탄생 과정을 미스터리 스릴러의 형식으로 풀어낸 영화다. 박목사라는 인물의 시선을 따라가며, 종교라는 구조가 신념인지 맹신인지, 구원인지 통제인지를 되묻는다. 본 리뷰에서는 ‘사바하’가 제시하는 종교의 다면성과 인간이 믿음을 가지게 되는 구조, 그리고 광신과 이단이 태어나는 심리적·사회적 맥락을 분석한다.
사바하, 믿음과 진실의 교차점
장재현 감독의 ‘사바하’는 기존의 종교영화와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종교와 믿음의 문제를 제기한다. 영화는 특정 종교에 대한 찬반이나 교리를 따지는 데 집중하지 않고, 믿음이라는 행위 자체가 인간에게 어떤 방식으로 작용하는지를 탐구한다. 그 중심에 선 인물은 ‘박목사’라는 이단 추적 전문가로, 그는 기존 교단의 목사가 아닌, 의심을 업으로 삼는 인물이다. 영화는 처음부터 하나의 사건이 아닌 여러 개의 단서를 흩뿌려 놓는다. 의문의 쌍둥이 자매, 사라진 아이들, 신흥 종교 집단 ‘수하’의 등장. 이 모든 것은 믿음과 의심, 구원과 파멸 사이의 모호한 경계를 암시하는 복선이다. 특히 ‘쌍둥이’라는 설정은 선과 악, 진실과 거짓이 구분되지 않는 종교적 구조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박목사는 믿음을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믿음을 조작하고 악용하는 자들을 파헤치며, 그 과정에서 자신도 점점 믿음의 영역 안으로 빨려 들어간다. 여기서 영화는 종교적 진실보다, 종교를 통해 형성되는 심리 구조에 집중한다. 사람들은 왜 믿고 싶어 하며, 그 믿음은 어디에서 기원하는가? 이 질문에 영화는 단순한 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오히려 혼란과 모순, 충돌 속에서 관객 스스로 판단하게 만든다. 특히 믿음을 빌미로 행해지는 폭력, 교주에 대한 맹신, 진실을 왜곡하는 방식들은 현대 사회 속 이단의 구조와 너무도 닮아 있다. ‘사바하’는 바로 그 지점을 찌른다. 믿음은 언제부터 맹신이 되는가? 진실을 가리는 종교는 어떻게 태어나는가? 결국 서론에서 우리는 이 영화가 단지 종교라는 테마를 활용한 것이 아니라, 인간이 불완전한 존재로서 어떤 대상을 절대화하고, 그 안에서 자신을 정당화하려는 심리적 작동을 예리하게 해부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믿음은 구원의 통로일 수도 있고, 파멸의 길잡이일 수도 있다. 영화는 그 양가성을 정확히 짚어낸다.
광신의 구조, 종교가 가진 두 얼굴
‘사바하’의 중심축은 광신이다. 단순히 ‘이단’이라는 키워드를 설정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단이 왜 생겨나는지를 심리적, 사회적, 제도적 측면에서 접근한다. 영화 속 수하 교단은 외부에선 신비롭고 고요한 종교로 보이지만, 내부에선 철저한 위계질서와 교주의 절대 권위, 생명을 좌우하는 교리로 유지된다. 이는 현실의 여러 종교적 폐해와 정확히 겹쳐진다. 광신은 두려움에서 비롯된다. 사람들은 불확실한 미래와 통제할 수 없는 현실에서 ‘절대적인 것’을 원하게 된다. 그 순간 누군가가 등장해 “정답을 안다”고 말하면, 그 사람은 신이 되며, 그 집단은 폐쇄적인 신념체계가 된다. ‘사바하’는 이 과정을 상세히 보여준다. 처음에는 ‘믿음’이었던 것이, 점점 ‘의무’가 되고, 끝내 ‘명령’으로 바뀌는 흐름. 이것이 바로 광신의 작동 방식이다. 영화는 이런 광신을 단순한 비극으로 처리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안에서 각 인물들이 느끼는 심리적 안도감, 소속감, 자아 정당화의 과정을 묘사함으로써, 광신이 왜 무서운지를 설명한다. 교단 내에서 지켜야 할 교리가 윤리를 대신하고, 그 속에서 폭력은 더 이상 죄가 아닌 ‘신의 뜻’이 된다. 이 지점에서 종교는 본래 목적에서 이탈하고, 파괴적 구조로 전이된다. ‘사바하’는 이중 구조를 활용한다. 표면적으로는 이단 추적 스릴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믿음과 종교라는 추상 개념의 본질을 해부하는 영화다. 박목사는 교리를 모르는 상태에서도 종교 구조의 위험성을 직감적으로 파악하고 움직이며, 이 과정은 관객에게도 ‘의심’의 중요성을 상기시킨다. 이는 단순한 부정이 아니라, 판단을 위한 사고의 시작이다. 결국 영화는 종교가 구원을 약속하면서도, 동시에 파멸의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믿음은 삶을 풍요롭게 하지만, 그것이 절대화되면 타인의 삶을 통제하고 지배하는 폭력으로 변질될 수 있다. ‘사바하’는 이 이중성을 종교 내부가 아닌, 인간 심리의 어두운 면에서 기인한 것으로 본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영화가 가진 통찰이다.
이단의 경계에서 신념을 묻다
‘사바하’의 결말은 명확한 구원도, 확실한 악의 심판도 보여주지 않는다. 오히려 모든 사건이 지나간 후 남는 것은 혼란과 의문이다. 이것이 바로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핵심이다. 진짜 문제는 종교의 형태가 아니라, 그 종교를 받아들이는 인간의 방식에 있다는 것. 결국 이 영화는 신념과 의심 사이에서 인간이 어떤 태도를 가질 수 있는지를 질문한다. 박목사는 사건을 해결했음에도 마음의 평온을 얻지 못한다. 그는 여전히 다음 이단을 쫓고 있고, 여전히 자신의 신념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한다. 이는 그가 ‘진실을 믿는 사람’이 아니라, ‘끝까지 의심하는 사람’이라는 설정을 반영한다. 이 지점에서 영화는 영웅 서사에서 벗어난다. 주인공조차 확신하지 못하는 세상, 그것이 영화가 말하는 진짜 현실이다. 영화는 종교가 인간에게 어떤 식으로 작동하는지를 보여주는 동시에, 믿음의 ‘방식’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맹신은 가장 위험한 형태의 믿음이며, 이단은 맹신이 낳은 구조적 파생물이다. 그리고 이러한 파생은 언제든 사회 속 어디에서든 일어날 수 있기에, 의심과 사유는 끊임없이 필요하다. ‘사바하’는 종교를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그것을 절대적인 것으로 두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보여준다. 인간은 불완전하고, 그 불완전함은 결국 어떤 대상을 신격화하고 싶은 욕망으로 이어진다. 영화는 그런 심리를 정면으로 바라보며,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이 믿는 것은 ‘진실’인가, 아니면 ‘안전함’인가? 이 영화는 종교라는 민감한 주제를 다루면서도, 어느 쪽도 쉽게 편들지 않는다. 믿음을 지키는 자도, 그것을 파헤치는 자도 모두 인간이며, 그 인간의 결핍과 욕망이 결국 이 모든 문제의 시작임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결핍을 인식하는 순간부터 비로소 우리는 ‘믿음’을 다시 정의할 수 있게 된다. ‘사바하’는 바로 그 정의의 출발점에서 끝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