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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인, 한국 근현대사의 역사, 저항, 표현의 자유, 양심의 투쟁

by red-sura 2025. 8. 8.

영화 "변호인" 포스터 사진

영화 ‘변호인’은 1980년대 초, 부산에서 실제 있었던 ‘부림 사건’을 모티프로 하여, 민주화 이전 한국 사회의 억압적 현실과 개인의 양심이 마주하는 순간을 생생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송강호가 연기한 변호사 송우석은 단순한 세금 전문 변호사에서 국가 권력에 맞서는 인권 변호사로 변화하며, 관객에게 ‘법이란 무엇인가’, ‘정의는 어디에 존재하는가’를 묻는다.

 

변호인, 법정에서 시작된 역사 인식

‘변호인’의 첫 장면은 한 변호사의 일상으로 시작된다. 송우석은 대학도 제대로 못 나온 ‘지잡대 출신’으로 무시받던 변호사였지만, 부동산 계약서와 세금 문제 등 돈 되는 사건만 맡아 꽤 안정적인 삶을 영위한다. 하지만 그의 삶은 단골 국밥집 아들의 고문 사건을 접하면서 완전히 전환점을 맞는다. 이 전환은 단순한 정의감이 아닌, 개인이 역사와 마주하는 순간 어떻게 변화하게 되는지를 보여주는 서사의 기점이다. 송우석의 변화는 천천히, 그러나 무겁게 다가온다. 그는 처음에는 변호를 회피하려 한다. "나 하나로 뭐가 바뀌냐"는 말은 당시 다수 시민의 보편적 태도를 대변한다. 그러나 사건의 진상을 알게 되면서, 그는 더 이상 외면하지 못하고 법정에서 싸우기로 결심한다. 이 지점에서 영화는 단순히 개인의 양심을 미화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선택이 얼마나 현실적으로 힘든지를 꾸준히 보여준다. ‘변호인’은 송우석을 이상화된 영웅으로 그리지 않는다. 그는 유쾌하지만 무책임하고, 법률 지식은 있지만 정치에는 무지했던 인물이다. 그러나 그가 변화하는 과정은 우리 모두가 어떻게 역사의 순간과 마주해야 하는지를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관객은 그의 어설픔과 망설임 속에서 더 큰 공감을 느끼게 된다. 영화는 특히 시대적 분위기를 디테일하게 복원한다. 경찰의 고문실, 수사관의 언어, 신문 기사, 거리의 시위대 등은 1980년대 초반 한국 사회의 폐쇄성과 억압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이 배경은 단지 과거의 풍경이 아니라, 현재까지 이어지는 인권과 법치의 문제를 상기시킨다. 영화는 과거를 통해 현재를 비춘다. 결국, ‘변호인’의 서론은 한 개인이 국가권력과 마주할 때,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하는지를 묻는다. 그리고 그 결정은 이성의 산물이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도리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 송우석의 결심은 거창하지 않다. 그러나 그 결심 하나가 한국 현대사의 흐름 속에 잔잔하지만 선명한 물결을 일으킨다.

 

표현의 자유와 양심의 경계

‘변호인’은 표현의 자유라는 추상적 개념을 아주 구체적인 갈등 구조 안에 배치한다. 고문 피해자들이 읽은 책은 단지 ‘사회과학 서적’이었고, 그것이 체제 전복의 의도라는 프레임으로 작용하며 고문과 재판이 이루어진다. 영화는 이를 통해 표현의 자유가 어떻게 국가 권력에 의해 억압될 수 있는지를 비판적으로 그려낸다. 법정 장면은 이 영화의 백미다. 송우석은 증거 없는 기소, 자백 강요, 무죄 추정 원칙의 무시 등 법의 기본이 전혀 작동하지 않는 현실과 싸운다. 그는 "국가는 국민을 지킬 의무가 있습니다"라는 한 마디로 관객의 심장을 울리는데, 이 대사는 단순한 선언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본질에 대한 질문으로 다가온다. 흥미로운 점은, 이 영화가 이념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는다는 것이다. 공산주의나 자본주의에 대한 직접적 논의는 거의 없다. 대신 영화는 ‘국가란 무엇인가’, ‘법은 누구를 위한 도구인가’라는 근본적인 물음을 던진다. 표현의 자유와 양심은 특정 진영의 문제가 아니라, 모두가 지켜야 할 최소한의 권리임을 강조한다. 송우석의 캐릭터는 극 중에서 점점 외로워진다. 친구들은 그를 피하고, 언론은 외면하며, 국가 기관은 적으로 돌아선다. 하지만 그는 끝까지 싸운다. 이는 단지 변호사로서의 역할이 아니라, 한 시대를 살아가는 시민으로서의 의무를 수행하는 장면이다. 영화는 이 투쟁이 비극적일 수밖에 없음을 보여주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싸움이 반드시 필요했음을 말한다. ‘변호인’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이후의 한국 사회에도 동일한 질문을 던진다. 오늘날 우리는 표현의 자유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 국가 권력은 여전히 우리 삶의 많은 영역에 영향을 미치고 있지는 않은가? 이런 질문들이 관객을 영화 밖 현실로 이끌며, 단지 한 사건의 회고가 아니라 지속적인 성찰로 이어지게 만든다. 결국 본론은 ‘변호인’이 단순한 법정 드라마를 넘어서, 양심과 자유라는 보편적 가치에 대한 탐구임을 증명한다. 그리고 그 가치는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서든 끊임없이 회복되어야 할 의무이자 권리다.

 

저항의 끝에서 남은 것들

‘변호인’의 결론은 비장하지만, 절망적이지 않다. 송우석은 승소하지 못했고, 사건은 체제 안에서 조용히 묻힌다. 그러나 영화는 승패의 문제가 아니라, 싸움의 의미에 집중한다. 그 싸움은 많은 사람들의 침묵을 깼고, 나중에라도 역사의 방향을 바꾸는 씨앗이 된다. 영화는 이 점에서 진정한 ‘변화’는 한 번의 재판이 아니라, 수많은 외침과 선택들의 누적으로 이뤄진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결말 장면에서 송우석은 법정에서 내쫓기며도 끝까지 외친다. "이건 국가가 국민을 공격한 사건입니다!" 이 외침은 단순한 대사 이상의 울림을 가진다. 그것은 1980년대뿐 아니라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선언이며, 한국 사회가 반복해서 직면해야 할 경고이기도 하다. ‘변호인’은 저항의 아름다움을 찬양하지 않는다. 오히려 저항은 외롭고 고통스러우며,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는 현실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럼에도 누군가는 움직여야 한다는 점을 설득력 있게 그려낸다. 그 움직임은 비록 작을지라도, 그것이 바로 역사의 방향을 조금씩 바꿔놓는 힘이 된다. 이 영화가 의미 있는 이유는, 단지 과거를 복원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 과거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얼마나 자유롭게 말하고 있으며, 법은 누구의 편인가, 양심은 얼마나 존중받고 있는가. 이런 질문들은 영화가 끝난 뒤에도 관객의 마음속에서 계속 이어진다. 결국 ‘변호인’은 민주주의의 기초를 묻는 영화다. 법이 힘 앞에서 얼마나 무력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과 정의를 믿어야 하는 이유를 말한다. 그리고 그 믿음은 한 사람의 외침에서 시작되며, 우리가 침묵하지 않을 때 완성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