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베테랑’은 통쾌한 액션에 머물지 않고, 권력형 범죄라는 한국 사회의 고질적 현실을 날카롭게 드러낸 작품이다. 류승완 감독 특유의 박진감 넘치는 연출은 사건 전개를 밀도 있게 끌고 가면서도, 중간중간 적재적소의 유머를 배치해 관객의 감정선에 숨 쉴 틈을 준다. 강력계 형사 서도철과 재벌 2세 조태오의 대립은 단순한 선악의 구도를 넘어 구조가 어떻게 개인의 선택과 책임을 왜곡하는지 보여준다. 재벌·언론·사법·정치가 느슨하면서도 단단하게 얽힌 카르텔은 사건의 진실을 은폐하고, 제도의 허점은 정의의 실현을 지연시킨다. 그러나 영화는 무력감에 주저앉지 않는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수사의 집념, 동료들의 연대, 시민의 눈앞에 드러난 사실이 결국 판을 뒤집는 과정을 통해 ‘정의는 노력으로 만들어지는 질서’임을 설득한다. 이 리뷰는 권력형 범죄의 실체, 캐릭터 묘사의 현실성, 결말의 의미라는 세 축으로 작품을 심층 분석한다.
영화 베테랑의 사회 고발적 의미
영화 ‘베테랑’의 사회 고발성은 이야기의 출발점에서부터 뚜렷하다. 초반부는 현장 형사들의 일상적 수사와 생계형 범죄자들의 에피소드로 시작하지만, 곧바로 재벌가 내부에서 발생한 폭력과 은폐의 정황으로 전환되며 리듬을 확 바꾼다. 이 교차는 ‘법의 촉수’가 누구에게는 촘촘하고 누구에게는 허술하다는 불평등의 체감을 시각적으로 전달한다. 서도철 팀이 땀 냄새 밴 현장을 밤낮없이 뛰어다니는 동안, 조태오 라인은 호텔 스위트룸과 비밀 접견 공간에서 사건을 미리 차단하고 흔적을 지운다. 연출적으로는 핸드헬드의 거친 호흡과 정면 응시 숏, 그리고 다층적 공간구성과 교차편집이 대비를 강화한다. 이런 리듬의 충돌은 관객에게 ‘무언가 결정적으로 비틀린 세계’를 인지시키는 첫 신호다. 이어서 등장하는 운전기사 폭행 사건은 가해와 은폐, 회유와 압박의 전형적 매뉴얼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합의금 제시, 피해자 낙인찍기, 언론관리, 내부자 입막음이 연쇄적으로 작동하며, 사건은 현실의 뉴스에서 보아 온 양상과 절묘하게 겹친다. 작품은 다큐멘터리처럼 건조하게 고발하지 않는다. 대신 서스펜스와 유머를 절묘하게 섞어 대중적 흡인력을 확보한 채로 사회 구조를 비판한다. 예를 들어, 기자회견장을 돌파하는 장면은 만화적 활극처럼 통쾌하지만, 동시에 공권력이 진실의 확산을 위해 ‘연대의 연출’을 해야만 하는 역설을 드러낸다. 즉, 정의는 저절로 오지 않으며, 설득과 장치, 관객(시민)의 시선을 끌어올 효과적인 무대가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영화는 이 점을 메타적으로 인식하며, 관객을 수사 서사의 공모자로 끌어들인다. 서도철의 캐릭터 설계 또한 사회 고발적 구조의 ‘접속자’다. 그는 절대 선인이 아니다. 다혈질이고, 종종 규정을 넘어선다. 그러나 그 과잉과 일탈은 권력의 과잉과 제도의 일탈을 견제하기 위한 일종의 균형추로 배치된다. 물론 이는 현실에서 위험할 수 있는 태도지만, 작품은 장르적 정서 위에서 그 균형을 설득력 있게 유지한다. 이때 유머는 비판의 날을 무디게 만드는 완충재가 아니라, 관객의 피로를 조절해 비판을 더 멀리 보낼 추진력으로 작동한다. 사회 고발이 관객의 감정 회로를 소진시키는 방식이 아니라, ‘참여 가능한 분노’로 전환되는 지점에서 영화의 힘이 커진다. 또 하나 주목할 것은 권력형 범죄의 ‘과정’에 대한 집요한 묘사다. 영화는 결정적 한 방의 증거나 영웅적 폭로로 모든 것이 해결되는 판타지를 경계한다. 대신 여러 증언의 퍼즐, 내부고발의 위험, 조직의 회유, 여론의 파도, 절차의 미로가 얽히며, 작은 돌파구들이 쌓여 판세를 바꾸는 과정을 그린다. 이는 정의 구현을 ‘사건의 결과’가 아니라 ‘사회적 과정’으로 재정의하는 태도다. 그래서 클라이맥스 직전의 장면들—피해자의 망설임, 팀원들의 갈등, 언론의 주저—은 단지 극적 장애물이 아니라, 현실의 난점을 시뮬레이션하는 장치다. 결국 ‘베테랑’의 사회 고발성은 통쾌함의 표면 아래 ‘어떻게 현실에서 이것이 가능해지는가’를 끝까지 질문하는 성실함에서 비롯한다. 영화는 선동 대신 설득을, 단발성 분노 대신 축적된 공감과 연대를 제시하며, 그 과정에서 관객에게 오래 남는 책임의 찌릿함을 남긴다.
권력형 범죄와 캐릭터의 현실성
권력형 범죄의 리얼리티는 캐릭터의 디테일에서 완성된다. 조태오는 전형적 카리스마형 대악당과 다르다. 그는 소리를 지르기보다 서늘하게 웃고, 문제를 힘으로 정면 돌파하기보다 시스템을 경유해 우회한다. 폭력은 일회성 분노 표출이 아니라 통제의 기술로 수행된다. 운전기사 폭행 장면이 강렬한 것은 타격감 때문이 아니라, 그 뒤에 이어지는 ‘사건관리 프로토콜’이 너무도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비서진의 분업, 법무팀의 법리 구성, 대관업무 라인의 메시지 관리, PR팀의 기사 라인 정리까지 시간차를 두고 정교하게 진행된다. 이 일련의 과정을 현장감 있게 포착하는 몽타주는 ‘개인의 악’이 아니라 ‘조직화된 악’이라는 본질을 응시하게 만든다. 반대로 서도철은 시스템 바깥의 야성만으로 싸우지 않는다. 그는 절차를 알고, 증거의 가치와 타이밍을 계산하며, 여론의 바람을 언제 불러들여야 하는지 판단한다. 즉, 캐릭터의 현실성은 ‘신념의 격투가’와 ‘권력의 관리자’라는 대비에서 나온다. 두 축은 각각 다른 속도와 문법으로 움직이며, 충돌할 때마다 장면의 밀도가 올라간다. 연기 또한 리얼리티를 견인한다. 유아인의 조태오는 분노의 폭발보다 권태의 표정을 더 많이 쓴다. 권태는 권력의 일상성에서 비롯한다. 그에게 폭력은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 ‘문제 해결의 한 방식’에 불과하다. 이 무감의 연기는 권력형 범죄의 무서움을 날카롭게 환기한다. 황정민의 서도철은 반대로 감정이 얼굴에 서린다. 이는 관객의 감정 이입을 위한 장치인 동시에, 현실의 수사관이 품을 수밖에 없는 피로와 분노, 무력감의 스펙트럼을 대변한다. 둘의 대립 장면은 기술적으로도 대비가 두드러진다. 조태오 쪽은 미장센이 정제되어 있고, 카메라는 안정적이며, 조명이 깨끗하다. 반면 서도철 쪽은 배경이 어수선하고, 핸드헬드가 많고, 조명이 거칠다. 미장센의 이질감은 계급과 권력의 비대칭을 무언으로 증언한다. 극중 주변 인물들 또한 현실감을 더한다. 내부고발자는 영웅이 아니라 지친 시민으로 그려지고, 팀원들은 이상과 생계 사이에서 갈팡질팡한다. 언론인 캐릭터 역시 전능하지 않다. 취재의 리스크와 편집의 벽, 데스크의 눈치를 넘나들며 ‘가능한 보도’를 모색한다. 이 디테일이 누적되며, 영화는 권력형 범죄가 ‘악인 한 명의 일탈’이 아니라 ‘여러 합리화의 네트워크’임을 설파한다. 그 네트워크 안에는 방관의 이익, 순응의 보상, 침묵의 안전이 얽혀 있다. ‘베테랑’은 이 점을 감정적 선악의 흑백논리로 퉁치지 않고, 시스템적 유혹의 층위를 드러내 관객에게 더 불편한 질문을 건넨다. 그래서 결론부의 타격감은 단순한 처벌의 쾌감이 아니라, 누적된 구조에 금이 가는 소리로 들린다. 캐릭터의 현실성은 곧 구조 비판의 사실성이다. 그리고 그 사실성은 장르의 쾌감을 갉아먹지 않고 오히려 증폭시킨다.
정의 구현의 카타르시스
‘베테랑’의 결말이 유난히 길게 남는 이유는 ‘이겼다’는 감탄사보다 ‘여기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이 선명하게 기억되기 때문이다. 호송 차량의 문이 닫히는 소리, 플래시와 카메라 셔터가 뒤엉키는 광경, 법정의 공기, 피해자의 떨리는 목소리, 그리고 서도철의 짧고 확신에 찬 응시가 연쇄적으로 관객의 심박을 끌어올린다. 영화는 이 연쇄를 속도감 있게 밀어붙이되, 단 한 순간도 감상에 젖지 않는다. 감독은 통쾌함을 제공하면서도 ‘현실의 난점’을 삭제하지 않는다. 자막과 암시, 주변 인물의 대사로 ‘다음 싸움’의 존재를 남겨두는 것이다. 그렇기에 카타르시스는 해방과 동시에 각성이다. ‘우리는 무엇을 봤고, 무엇을 더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쾌감 뒤에 이어진다. 서사 전략 측면에서 보면, 결말은 앞선 두 축—사회 고발성과 캐릭터의 현실성—이 정확히 만나 불꽃을 튀기는 지점이다. 고발은 과정의 설득으로, 현실성은 감정의 진실성으로 축적되었고, 결말에서 비로소 두 축은 관객의 체험으로 전환된다. 즉, 관객은 ‘정의 구현의 장면’을 보는 것이 아니라 ‘정의를 구현하는 체험’을 한다. 이 체험이 가능하려면 영화적 문법의 정교함이 필수다. 음악의 볼륨은 과도하게 치솟지 않고, 타격음과 공간음이 현장감을 책임진다. 편집은 인물의 표정 컷을 과도하게 남발하지 않고, 거리와 구도를 바꿔 시점의 호흡을 조절한다. 이 덕분에 관객은 스스로 장면을 ‘판독’하는 체험을 이어간다. 또한 결말은 도덕극의 교시로 미끄러지지 않는다. 조태오의 몰락은 ‘사필귀정’의 상투적 도장찍기가 아니라 ‘증거와 연대가 만든 귀결’로 제시된다. 그 차이가 카타르시스의 품격을 결정한다. 더불어 영화는 희망을 값싸게 팔지 않는다. 승리의 순간에도 제도적 빈틈은 남아 있고, 비슷한 사건은 다시 생길 것이다. 그럼에도 카타르시스가 유효한 이유는, 이 승리가 다음 싸움의 기준점이 되기 때문이다. 관객은 극장을 나서며 두 가지 감정을 동시에 품는다. 통쾌함과 숙제. 통쾌함은 감정의 보상이고, 숙제는 사회적 책임이다. ‘베테랑’의 결말은 바로 이 이중 효과를 설계한다. 그래서 이는 끝이 아니라 시작처럼 느껴진다. 정의는 한번 실현되면 영구적으로 유지되는 상태가 아니라, 반복해서 가동되어야 하는 사회적 프로세스임을, 영화는 장르적 쾌감의 언어로 또렷하게 상기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