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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더, 봉준호 영화세계와 모성, 통제, 불확실성의 구조

by red-sura 2025. 8. 6.

영화 "마더" 포스터 사진

봉준호 감독의 ‘마더’는 단지 미스터리 스릴러 장르를 넘어서는 작품이다. 이 영화는 한 개인의 모성이 사회와 진실을 통제하려는 시도로 발전하는 과정을 통해, 봉준호 감독이 지속적으로 탐구해 온 주제들 모성, 권력, 불확실성을 가장 응축된 형태로 드러낸다. 특히 ‘마더’는 그의 작품세계 중에서도 가장 밀도 높고 불편한 감정선을 다루며, 관객으로 하여금 도덕적 판단의 한계에 직면하게 만든다. 이 리뷰에서는 ‘마더’를 통해 봉준호 감독이 구축한 영화적 세계의 핵심 구조를 분석한다.

 

마더를 통해 본 모성의 역설

봉준호 감독의 영화세계는 항상 특정한 사회구조나 인간 내면을 비틀고 확장하는 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마더’는 그 중에서도 유일하게 여성 인물이 중심에 놓인 작품으로, 모성이 어떻게 아이를 보호하는 수단을 넘어, 진실을 통제하려는 권력으로 변질되는지를 보여준다. ‘마더’의 모성은 헌신적인 사랑으로 포장되지만, 그 이면에는 자신의 아들을 위해서라면 어떤 도덕도 유예할 수 있다는 폭력성이 숨어 있다. 영화는 초반부부터 관객에게 명확한 정의를 제공하지 않는다. 아들이 범죄자로 몰리고, 어머니가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는 과정을 통해 서사가 진행되지만, 그 중심에는 감정이 아닌, 행동의 의도와 그 결과가 남는다. 봉준호는 이 영화에서 ‘사랑’이라는 감정을 통해 사회적 통념을 깨뜨리는 동시에, 모성의 순수함이라는 신화를 해체한다. 카메라는 어머니의 뒷모습을 집요하게 따라간다. 그녀가 거리를 걷고, 증거를 찾고, 사람들과 대면할 때, 우리는 그녀의 얼굴보다 그녀의 판단을 본다. 이때 봉준호는 시선을 통해 행동의 동기를 관객이 추론하게 만든다. 감정에 호소하는 대신, 관객은 ‘왜 저런 선택을 했는가’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게 된다. 또한, ‘마더’는 사회 구조 속에서 여성의 위치를 조명한다. 주인공 어머니는 경제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취약한 위치에 있으며, 그녀가 세계를 바꿀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모성’이다. 그리고 바로 그 모성이 영화 전반을 통제하고 파괴하는 힘으로 작용하면서, 봉준호는 모성에 대한 신화를 가장 급진적으로 재해석한다. 이는 이전 작품들에서 볼 수 없었던 결의 연출이며, ‘마더’를 봉준호 영화세계의 정점 중 하나로 만드는 요소다.

 

통제와 해체의 서사 구조

‘마더’는 이야기 구조에서 통제를 핵심 장치로 삼는다. 어머니는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점점 더 극단적인 행동을 하게 되며, 이는 단지 모성의 발현이 아니라, 서사의 전개 자체를 어머니의 통제하에 두는 구조로 이어진다. 흥미로운 점은, 이 통제가 영화 속에서 완벽하게 작동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어머니는 진실에 가까워질수록 점점 더 불확실한 결론에 도달하게 되고, 이 모순이 봉준호의 영화적 세계관을 상징한다. 봉준호는 대부분의 영화에서 질서의 해체를 다룬다. ‘기생충’에서 계층 구조가 무너지듯, ‘마더’에서도 진실의 구조가 무너진다. 어머니는 진실을 원하지만, 그 진실은 그녀가 감당할 수 없는 형태로 존재하며, 결국 ‘알아서는 안 되는 것’이 된다. 영화는 마지막 순간에 이르러, 그녀의 통제가 결국 실패했음을 시사하며, 관객에게 무엇이 옳은지 질문을 던진다. 이 과정에서 봉준호 감독은 전형적인 범죄 스릴러 문법을 비틀어 사용한다. 관객은 추리소설처럼 단서를 따라가지만, 끝에는 정답이 없다. 대신 남는 것은 인간의 불완전성과 감정의 불가해함이다. 어머니가 행한 행동들이 과연 ‘사랑’에 의해 정당화될 수 있는가? 그리고 그 행동의 결과가 누구를 위한 것이었는가? 이러한 복합적인 질문들이 서사 속에 겹겹이 쌓이면서, 영화는 단순한 사건 재구성이 아니라, 인간 내면의 윤리와 충돌을 그리는 거대한 프레임으로 확장된다. ‘마더’의 구조는 봉준호 특유의 블랙 유머나 풍자보다 훨씬 밀도 높은 드라마를 구현하고 있으며, 이는 그가 장르를 넘나드는 감독이라는 점을 입증한다. 통제하려는 의지와 그 의지의 한계를 병치시킴으로써, ‘마더’는 그 자체로 하나의 인간 심리 실험이 된다.

 

불확실성이라는 진실의 얼굴

‘마더’의 마지막 장면은 무용수처럼 흔들리는 어머니의 뒷모습으로 끝난다. 이 장면은 해방의 몸짓일 수도 있고, 죄책감의 회피일 수도 있다. 봉준호는 결코 이 장면에 확정적인 해석을 부여하지 않는다. 대신 관객은 영화가 던진 질문들 "모성이란 무엇인가, 통제는 가능한가, 진실은 존재하는가"에 대한 자신만의 답을 고민하게 된다. 이 불확실성은 단지 열린 결말의 장치가 아니라, 봉준호 영화세계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가치이기도 하다. 그는 모든 영화에서 관객이 정답을 찾기를 포기하고, 대신 질문 속에 머무르게 만든다. ‘마더’는 바로 그 질문들이 가장 치열하게 전개되는 영화이며, 불확실성 속에서 진실을 직시하려는 시도를 보여준다. 결국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명확하다. 인간의 감정과 윤리는 단선적인 정의로 해석될 수 없으며, 특히 모성과 같은 복합적 감정은 구조와 결론이 아닌 과정과 응시를 통해 이해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진실은 단지 사실의 나열이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태도와 해석의 방식에서 만들어진다. ‘마더’는 장르 영화의 탈을 쓰고 있지만, 실제로는 인간 본성과 윤리에 대한 철학적 탐구이다. 그리고 그 탐구의 도구로 봉준호는 불확실성을 사용한다. 진실은 항상 어딘가에 존재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관객의 몫이다. 이 점에서 ‘마더’는 가장 봉준호다운 영화이며, 동시에 가장 불편한 질문을 남기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