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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리 슈슈의 모든것, 고독 폭력 음악이 교차하는 이야기

by red-sura 2025. 8. 19.

영화 "릴리 슈슈의 모든것" 포스터 사진

영화 릴리슈슈의 모든것은 청소년기의 고독과 폭력, 그리고 음악이 만들어내는 심리적 탈출구를 정교하게 그려낸 이와이 슌지 감독의 대표작이다. 작품은 단순한 성장 서사가 아니라, 인터넷과 대중음악이라는 매개체 속에서 자신을 구원하려는 아이들의 불안정한 내면을 포착한다. 릴리슈슈라는 가상의 가수는 청소년들이 의지할 수 있는 상징으로 존재하지만, 동시에 현실을 바꾸어주지 못하는 허상으로 남는다. 영화는 고독과 폭력, 음악이라는 세 가지 축이 서로 교차하며, 인간이 성장 과정에서 겪는 가장 취약한 순간을 잔혹하면서도 서정적으로 드러낸다.

릴리 슈슈의 모든것 청소년 고독을 잔혹하게 드러낸다

릴리슈슈의 모든것은 일본 사회에서 청소년이 겪는 고독의 깊이를 잔혹하게 드러내며, 이를 단순한 개인적 문제로 그리지 않고 구조적 배경과 연결시킨다. 영화 속 유이치는 주변 친구들과 함께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 있지만, 정작 누구와도 진정으로 연결되지 못한다. 청소년기의 인간관계가 불안정한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일 수 있으나, 영화는 이를 ‘연결 실패’라는 구조적 문제로 제시한다. 그는 교실이라는 사회적 공간에서 배제되고, 가정에서도 충분히 이해받지 못하며, 결국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공간에서 자기 존재를 확인하려 든다. 이 지점에서 영화는 2000년대 초반 일본 사회의 특수한 상황과 맞닿아 있다. 인터넷이 급속히 확산되던 당시, 많은 청소년들이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정체성을 모색했다. ‘릴리피아’라는 가상의 게시판은 이러한 현실의 반영이다. 유이치가 현실에서 실패한 소통을 온라인에서 대체하려는 모습은, 고독이 단순한 내적 감정이 아니라 시대적 산물임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 공간 또한 환상에 불과하며, 고독의 해소가 아닌 더욱 큰 괴리를 낳는다. 이와이 슌지 감독은 이러한 고독을 시각적으로 강조하기 위해 독특한 촬영 방식을 사용한다. 흐릿하고 탁한 색감, 길게 지속되는 롱테이크, 그리고 인물들이 텅 빈 풍경 속에 홀로 서 있는 장면들은 관객에게 청소년기의 고독을 체감하게 한다. 이는 단순히 외로운 얼굴을 보여주는 수준이 아니라, 세계와 단절된 존재의 감각을 시각적으로 형상화한다. 결국 릴리슈슈의 모든것에서 청소년 고독은 단순한 성장기의 흔한 경험이 아니라, 생존 자체를 위협하는 실존적 위기로 나타난다. 이는 일본 사회에서 빈번하게 논의된 ‘히키코모리’나 ‘학교 부적응’ 현상과도 연결된다. 감독은 특정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반이 만들어낸 구조적 고립을 다루고 있으며, 이는 이 영화가 단순한 성장 영화로 머물지 않고 시대적 기록으로 읽히게 하는 중요한 이유가 된다.

청소년 폭력을 차갑게 해부한다

이 영화에서 폭력은 청소년 고독의 연장선이자 사회적 구조의 산물로 제시된다. 호시노가 보여주는 폭력성은 단순히 ‘나쁜 학생’의 문제로 축소되지 않는다. 그는 학교라는 제도의 규범을 깨뜨리고 친구들을 괴롭히지만, 동시에 그 역시 시스템 속에서 고립된 피해자일 수 있다. 이 지점에서 영화는 폭력을 도덕적 차원에서 단순히 비난하기보다, 구조적 문제로 인식하게 한다. 폭력의 형태 또한 다양하게 묘사된다. 물리적 구타뿐 아니라 언어적 모욕, 관계에서의 배제, 성적 착취까지 등장한다. 이는 청소년기 폭력이 단순히 우발적 사건이 아니라, 권력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재생산되는 구조임을 드러낸다. 특히 인터넷 공간에서의 모욕과 소문은 오프라인에서의 폭력보다 더 심리적으로 파괴적인 결과를 낳는다. 이 점은 오늘날 사이버 불링 문제와도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연출 방식 또한 폭력을 차갑게 해부하는 데 기여한다. 카메라는 폭력 장면을 과도하게 감정적으로 다루지 않는다. 오히려 건조한 시선으로 상황을 따라가며, 관객에게 불쾌한 현실을 그대로 목격하도록 강제한다. 이는 폭력을 미화하거나 오락적으로 소비하는 전통적 영화 연출과 차별화된다. 관객은 호시노의 폭력적 장면을 보는 순간 분노나 연민 이전에 극도의 불편함을 경험한다. 이는 영화가 폭력을 스펙터클로 소비시키지 않으려는 의도적 선택이다. 또한, 영화는 폭력을 개인 간의 문제로 환원하지 않는다. 청소년들이 처한 환경 자체가 폭력을 낳는다는 점을 강조한다. 교실은 이미 권력과 배제가 만연한 공간이고, 가정 또한 충분히 아이들을 보호하지 못한다. 결국 아이들은 서로를 공격하며 살아남으려 한다. 폭력은 고독에서 비롯되고, 그 폭력이 다시 고독을 심화시키는 악순환이 영화 전반에 걸쳐 묘사된다. 이러한 폭력의 해부는 일본 사회가 직면한 청소년 문제를 비추는 거울로 읽을 수 있다.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 일본 사회는 청소년 범죄와 왕따 문제로 큰 논란을 겪었다. 릴리슈슈의 모든것은 이 현실을 차갑게 반영하며, 폭력을 단순한 일탈이 아닌 구조적 재생산의 결과로 제시한다. 이 점에서 영화는 단순히 충격적인 드라마를 넘어, 사회적 진단의 기능을 수행한다.

음악을 통해 고독과 폭력을 비춘다

릴리슈슈라는 가상의 가수와 그녀의 음악은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상징이다. 음악은 아이들에게 고독과 폭력을 잠시 잊게 해주는 피난처이자, 동시에 현실을 바꾸지 못하는 허상으로 남는다. 주인공들이 릴리슈슈의 노래에 몰입하는 이유는, 그것이 그들에게 유일하게 허락된 치유의 순간이기 때문이다. 음악은 위로이자 자기 존재를 확인하는 매개체로 기능한다. 그러나 감독은 음악을 단순히 구원으로만 그리지 않는다. 릴리슈슈의 노래는 아름답지만, 그것은 현실을 변화시키지 못한다. 음악은 순간적인 위안을 줄 뿐, 아이들이 처한 폭력적 구조와 고독을 없애주지 않는다. 이 점에서 음악은 구원의 환상과 동시에 절망의 상징이다. 아이들은 릴리슈슈의 노래 속에서 자신이 살아 있다고 느끼지만, 음악이 멈추는 순간 다시 절망 속으로 떨어진다. 연출적으로도 음악은 독특하게 활용된다. 감독은 서정적인 음악을 폭력 장면이나 고독한 장면에 병치시킨다. 이로써 음악의 아름다움과 현실의 잔혹함이 동시에 느껴지며, 관객은 심리적 충돌을 경험한다. 이는 음악이 단순한 배경음이 아니라, 영화의 주제를 전달하는 적극적 장치임을 보여준다. 릴리슈슈의 모든것은 음악을 통해 청소년들의 내면을 투영한다. 현실에서 소통할 수 없는 아이들이 음악을 통해 서로 연결되고, 그 안에서 자기 존재를 확인한다. 하지만 음악은 결국 허상임이 드러난다. 릴리슈슈는 실재하지 않는 가수이며, 그녀의 존재는 오직 인터넷과 상상 속에서만 유효하다. 이는 청소년들이 의지하는 위로가 얼마나 불안정하고 취약한 것인지를 보여준다. 이 영화에서 음악은 고독과 폭력이라는 두 개의 축을 동시에 비추는 거울이다. 그것은 희망과 절망, 위로와 허무를 동시에 내포하며, 아이들의 불안정한 심리를 그대로 반영한다. 결국 릴리슈슈의 음악은 구원이 아니라, 구원이 필요하다는 절박한 외침을 상징하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영화는 음악의 양가적 성격을 정교하게 드러내며, 청소년기의 가장 복잡한 내면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