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레미제라블, 구원과 양심의 충돌과 정의의 재해석

by red-sura 2025. 8. 2.

영화 레미제라블 포스터 사진

영화 ‘레미제라블(Les Misérables, 2012)’은 빅토르 위고의 고전을 바탕으로, 인간 구원과 양심의 갈등, 그리고 법과 정의의 의미를 깊이 있게 탐구하는 작품입니다. 뮤지컬 영화라는 형식을 빌렸지만, 그 이면에는 사회 구조의 모순과 개인의 도덕적 선택이 맞물리는 복잡한 인간 드라마가 존재합니다. 이번 글에서는 장 발장과 자베르의 대비를 통해 구원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양심이 어떻게 법과 충돌하는지, 그리고 궁극적으로 이 영화가 정의를 어떻게 재해석하는지를 살펴봅니다.

 

레미제라블이 보여주는 구원의 서사와 인간 재창조

영화는 장 발장이 감옥에서 출소하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단 하나의 빵을 훔친 죄로 19년의 강제노역을 견디고 나온 그는 이미 사회로부터 철저히 배제된 존재입니다. 출소 직후에도 사람들은 그를 ‘전과자’라는 낙인으로 거부하며, 그가 어디에 있든 환영받지 못하는 현실은 그에게 또 다른 죄를 짓게 만듭니다. 하지만 주교 미리엘이 그에게 베푼 자비는 발장의 삶을 완전히 바꿉니다. 은촛대를 훔쳤음에도 그를 경찰에 넘기지 않고 오히려 그에게 그것들을 선물로 주며,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라고 말합니다. 이 장면은 영화 전체에서 가장 핵심적인 ‘구원의 순간’이며, 발장이 법과 폭력의 언어가 아닌 자비와 양심의 언어로 처음 대면하는 사건입니다. 그는 이 사건을 계기로 새로운 사람으로 다시 태어납니다. 새로운 이름으로 사업가가 되고, 한 도시의 시장이 되는 등, 그는 철저히 자신의 삶을 사회적으로도, 윤리적으로도 재구성합니다. 여기서 영화는 ‘구원’이란 교리나 제도의 산물이 아니라, 인간 간의 연대와 자비라는 점을 강조합니다. 장 발장의 재탄생은 단순히 죄를 씻는 차원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한 삶을 통해 새로운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이 지점에서 ‘레미제라블’은 죄와 벌의 도식을 넘어서, 인간 내면의 변화가 진정한 구원을 낳는다는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양심과 법의 충돌, 자베르의 내적 붕괴

장 발장의 대척점에 있는 인물은 자베르입니다. 그는 법의 집행자이며, 질서와 규율의 수호자입니다. 자베르에게 있어 법은 곧 정의이며, 법을 어기는 자는 어떠한 이유로도 용납될 수 없습니다. 장 발장이 시장이 되어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동안에도, 자베르는 그를 ‘도망자’로만 인식합니다. 이러한 자베르의 시선은 인간의 변화 가능성을 완전히 부정합니다. 그는 과거의 죄가 영원히 지워질 수 없다고 믿으며, 그것이 법의 공정함을 유지하는 길이라고 여깁니다. 하지만 이러한 신념은 발장의 행동과 끊임없이 충돌하게 됩니다. 특히, 발장이 자베르를 살려주는 장면은 자베르의 내면을 근본부터 뒤흔드는 계기가 됩니다. 발장은 자신을 체포하러 온 자를 죽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목숨을 구해주며, ‘법의 적’이 아닌 ‘양심의 실천자’로서 행동합니다. 자베르는 이 장면을 통해 스스로의 법적 절대성이 무너짐을 경험합니다. 자신이 지켜온 법과 질서가, 오히려 인간다운 도덕성과는 어긋나 있음을 체감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충돌은 자베르를 서서히 붕괴시킵니다. 그는 자신이 믿어온 정의에 대한 확신을 상실하게 되고, 결국 스스로 삶을 마감함으로써 그 충돌에서 도피합니다. 자베르의 죽음은 단순한 파멸이 아니라, 양심과 법 사이에서 길을 찾지 못한 인간의 비극적 선택입니다. 이 대립을 통해 영화는 질문을 던집니다. 법을 지키는 것이 항상 정의로운가? 인간은 과거의 죄를 씻을 수 없는가? 그리고 정의는 과연 객관적이고 절대적인 것인가? 레미제라블은 자베르라는 인물을 통해 이 복잡한 질문들을 관객에게 끊임없이 환기시킵니다.

 

정의의 재해석과 시대를 초월한 질문

‘레미제라블’은 단순히 과거의 사회적 억압이나 가난을 고발하는 작품이 아닙니다. 영화는 사회 제도와 도덕, 그리고 인간 내면의 싸움을 조명하며,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철학적 질문을 던집니다. 특히 장 발장과 자베르의 대비는 정의에 대한 이분법적 시선을 해체하고, 정의가 때로는 비가시적이고 감정적인 형태로 존재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장 발장의 삶은 법이 정의를 담보하지 못할 때, 인간적 양심이 정의를 실현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합니다. 그는 제도와 규율을 벗어나 인간 본연의 선의와 자비를 선택했고, 그 선택이야말로 궁극적인 정의의 모습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반대로 자베르는 법과 정의를 동일시한 나머지, 인간적인 변화나 용서의 가능성을 완전히 부정합니다. 결국 그는 시대와도, 인간성과도 충돌하며 자신을 해체하게 됩니다. 이 장면은 ‘완전한 정의’란 실체가 없으며, 그 자체로는 인간을 구원할 수 없다는 역설을 드러냅니다. 이처럼 ‘레미제라블’은 법과 양심, 정의와 구원이라는 거대한 주제를 인물 간의 극적인 충돌을 통해 설득력 있게 전개합니다. 그 안에서 영화는 시대를 초월해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윤리적 질문을 던집니다. 오늘날 우리가 마주하는 정의는 법으로만 설명되지 않으며, 진정한 정의는 인간 내면의 양심과 선택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영화는 조용히, 그러나 강력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메시지는 관객에게 깊은 사유를 남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