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2017년작 <덩케르크>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 덩케르크 해안에서 벌어진 실화를 독창적인 시간 구조와 편집 기법을 통해 재구성한 작품이다. 이 영화는 전통적인 전쟁 영화의 문법에서 벗어나, 육지, 바다, 하늘이라는 세 공간을 각기 다른 시간축으로 설정하고 이를 교차 편집하여 독창적인 영화적 체험을 제공한다. 놀란은 장대한 전투 장면보다 병사들이 느끼는 시간의 압박과 심리적 긴장을 전면에 내세워 관객을 전쟁 한가운데로 이끈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요소는 한스 짐머의 음악, 리얼리즘을 살린 촬영, 그리고 대사보다 상황을 전달하는 연출이다. 결과적으로 <덩케르크>는 단순한 사건 재현이 아니라, 전쟁이라는 비인간적인 상황을 ‘체험’하게 만드는 영화로 자리매김했다.
덩케르크의 독창적인 전쟁 재현
덩케르크는 단순히 전쟁사를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를 철저히 영화적 언어로 재해석한 사례다. 놀란 감독은 제2차 세계대전 덩케르크 철수 작전을 배경으로 하지만, 일반적인 전쟁 영화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영웅 서사’를 의도적으로 배제한다. 이 영화에서 병사들은 이름조차 명확히 부각되지 않으며, 그들의 개인적 사연은 최소한으로 묘사된다. 이는 전쟁 속 인간 군상의 한 단면을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라, 전쟁이라는 상황 자체를 주인공으로 삼기 위한 선택이다. 육지에서 일주일 동안 살아남으려는 병사들, 하루 동안 바다를 건너 구조에 나선 민간 선박, 한 시간 동안 하늘에서 엄호 비행을 하는 전투기 조종사, 이 세 축의 이야기는 각기 다른 시간적 리듬으로 전개되지만, 교차 편집을 통해 하나의 거대한 서사로 결합된다. 놀란은 이를 통해 전쟁의 혼란스러움과 각기 다른 입장에서 느끼는 체감 시간을 시각적으로 구현한다. 특히, 영화의 첫 장면에서 병사들이 총탄을 피해 해안가로 달려가고, 이를 바라보는 시선이 점차 넓어지면서 관객은 이미 사건의 한가운데에 들어와 있는 듯한 몰입감을 느끼게 된다. 미장센의 배치는 절제되어 있으면서도, 넓은 해변과 거대한 하늘, 그리고 멀리서 들려오는 폭격음이 심리적 압박을 형성한다. 이 같은 연출은 관객으로 하여금 전쟁 속에서의 ‘기다림’과 ‘불확실성’을 생생하게 체험하게 만든다. 덩케르크의 독창성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놀란은 전쟁의 참상을 감정 과잉 없이 담담하게 보여주면서, 오히려 그 공포를 배가시킨다. 이는 다큐멘터리적 리얼리즘과 영화적 긴장감이 절묘하게 결합된 결과다. 관객은 특정 인물의 시선에 갇히지 않고, 마치 전장을 떠도는 유령처럼 세 시공간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상황을 목격한다. 이러한 전쟁 재현 방식은 ‘보고 느끼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있는 듯한 체험’을 제공하는 새로운 형태의 전쟁 영화로서 평가받는다.
교차 편집과 시간축의 변주
덩케르크의 핵심적인 영화적 장치는 바로 세 가지 시간축을 활용한 교차 편집이다. 육지에서의 이야기는 1주일, 바다에서는 1일, 하늘에서는 1시간이라는 전혀 다른 시간 단위를 가진다. 놀란은 이 세 개의 시공간을 서로 맞물리게 하여, 절정의 순간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도록 설계했다. 예를 들어, 하늘에서의 격투기가 절정에 이르는 순간, 바다에서는 민간 선박이 폭격을 피하며 병사들을 구출하고, 육지에서는 마지막 탈출을 시도하는 병사들의 장면이 맞물린다. 이 시퀀스의 편집은 단순한 시간 압축이 아니라, 서로 다른 체감 속도의 시각화다. 전쟁터에서 하루는 길고, 1분은 더 길다. 병사들에게 하루는 영원처럼 느껴지고, 전투기 조종사에게 1분은 생사의 갈림길이 된다. 한스 짐머의 음악은 이러한 시간의 심리를 더욱 강화한다. 그는 ‘틱톡’하는 시계 효과음을 반복해 삽입해, 관객이 시간에 쫓기는 감각을 실제로 느끼게 만든다. 교차 편집의 리듬은 점차 빨라지고, 사건의 긴박함은 배가된다. 특히 놀란은 시공간의 전환을 시각적으로 부드럽게 연결해, 세 이야기의 균형을 유지한다. 때로는 한 장면의 시각적 요소를 다음 장면으로 이어 붙이며, 관객이 혼란스럽지 않도록 설계한다. 이 방식은 단순히 영화적 기교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전쟁의 예측 불가능성과 다양한 시점에서의 체감을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그 결과, 관객은 전쟁을 ‘목격’하는 것이 아니라 ‘참여’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진다. 이는 덩케르크가 다른 전쟁 영화와 차별화되는 결정적인 이유이자, 영화적 실험으로서 높은 평가를 받는 지점이다.
전쟁 영화 장르에 남긴 새로운 발자취
덩케르크는 전쟁 영화 장르의 문법을 새롭게 정의한 작품이다. 기존 전쟁 영화가 스토리 중심, 특히 영웅 서사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았다면, 덩케르크는 상황 중심, 경험 중심의 구조를 선택했다. 이 영화에는 개인적 드라마나 전투의 영웅담이 거의 없다. 대신, 시간과 공간, 그리고 편집을 통해 전쟁의 긴박감과 공포를 생생하게 전달한다. 이는 전쟁 영화의 ‘서사적 완결성’보다 ‘체험적 완결성’을 우선시하는 접근이다. 특히, 교차 편집과 시간축 변주는 이후 전쟁 영화뿐 아니라 스릴러, 재난 영화 장르에도 영향을 미쳤다. 덩케르크는 전투 장면의 화려함 대신 관객이 스스로 상황을 조립하고 의미를 부여하게 만들며, 이를 통해 영화의 몰입도를 극대화한다. 또한, 실물 촬영과 미니멀한 CG 사용은 현실감을 높였고, 음향 설계와 음악은 긴장감 형성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결과적으로 덩케르크는 단순한 역사 재현이 아니라,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을 감각적으로 체험하게 하는 예술적 실험이자 장르적 혁신으로 남았다.